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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 로렌초 베르니니의 조각 예술과 바로크 회화적 표현의 융합

by overtheone 2025. 5. 31.

잔 로렌초 베르니니(Gian Lorenzo Bernini, 1598–1680)는 바로크 시대를 대표하는 이탈리아 조각가이자 건축가로, 조각이라는 장르에 회화적 생동감을 불어넣은 인물로 평가받는다. 그의 작품은 단순한 입체 조형을 넘어 감정의 극대화, 순간 포착, 공간과의 통합 등 다양한 예술적 요소를 담고 있으며, 이는 곧 조각의 개념을 재정의한 혁신으로 이어졌다. 본 글에서는 베르니니의 생애와 예술 철학, 대표작을 중심으로 그의 회화적 조각 기법이 가지는 의미와 서양 예술사에 끼친 영향을 고찰한다.

잔 로렌초 베르니니 관련 사진

바로크 시대, 감각의 예술이 꽃피다

17세기 유럽은 종교개혁과 반종교개혁이 충돌하며 예술의 양식과 기능에 지대한 변화를 가져온 시기였다. 이 시기의 예술은 더 이상 중세의 상징적 표현에 머물지 않고, 인간의 감정과 현실의 생동감을 적극적으로 반영하는 방향으로 진화하였다. 이러한 바로크 예술의 정점에 서 있던 인물이 바로 잔 로렌초 베르니니(Gian Lorenzo Bernini)이다. 베르니니는 이탈리아 로마에서 태어나 조각가인 아버지의 영향을 받아 어린 시절부터 조각에 재능을 보였다. 그는 로마 교황청의 지원 아래 주요 대성당, 분수, 기념비를 제작하며 일찍이 명성을 얻었고, 단순한 궁정 예술가를 넘어 예술 감독자, 무대 디자이너, 도시 설계자로서의 역할도 수행하였다. 그러나 무엇보다 베르니니를 독보적인 존재로 만든 것은 그의 조각이 보여주는 ‘회화적 표현’의 경지이다. 그가 창조한 조각은 단순한 형태의 묘사를 넘어서 극적인 순간, 정서의 폭발, 심리적 긴장감 등을 고도로 포착한다. 이는 마치 바로크 회화가 보여주는 역동성과 시각적 몰입을 삼차원 공간 속에서 실현한 것이며,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시도였다. 미켈란젤로 이후 조각의 표현이 다소 고전주의에 머물러 있던 것을 감안하면, 베르니니의 등장은 조각 예술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예고하는 사건이라 할 수 있다. 그는 특히 '행동의 순간'을 포착하는 데 천부적인 재능을 보였다. 고대 조각이 보여주는 정적 구도나, 르네상스의 이상화된 조화와 달리, 그의 조각은 순간의 격렬함과 에너지를 실시간으로 재현한 듯한 인상을 준다. 이는 관람자가 조각을 보는 데 그치지 않고, 감정적으로 몰입하고 참여하게 만든다. 바로 이 점이 베르니니 조각이 회화적이라 불리는 이유다. 이러한 회화적 조각은 기술적 완성도, 주제의 선정, 극적 구성, 재료의 활용 등 복합적인 요인 속에서 구현된다. 본론에서는 그의 대표작을 중심으로 그가 어떻게 조각을 '그림처럼' 만들었는지를 보다 구체적으로 분석하고자 한다.

 

베르니니 조각의 회화적 전략: 형태 너머의 감정

잔 로렌초 베르니니의 조각을 회화적이라고 부르는 이유는 단지 시각적인 아름다움 때문만은 아니다. 그의 조각은 단순한 형상의 묘사를 넘어서, 시공간적 서사를 내포한 감정의 장면을 구성한다. 즉, 그의 조각은 말 그대로 ‘시간이 멈춘 회화’이자, ‘움직이는 형상’이라 할 수 있다. 그 대표적인 예가 <다비드> 상이다. 미켈란젤로의 다비드가 싸움 직전의 긴장된 정적을 담았다면, 베르니니의 다비드는 바로 물매를 던지는 찰나의 순간을 담고 있다. 근육의 수축, 시선의 집중, 입술의 움직임 등은 실제로 시간 속에 존재하는 듯한 느낌을 자아낸다. 이는 바로크 회화가 자주 구사하는 ‘순간성(momentariness)’을 조각으로 옮겨온 대표적 사례다. 또한 <성녀 테레사의 황홀>은 감정의 묘사라는 점에서 베르니니 회화적 조각의 정점으로 평가받는다. 천사의 손에 찔린 성녀의 표정은 단순히 고통과 쾌락의 경계에 있는 인간 감정을 섬세하게 표현하며, 마치 카라바조 회화의 인물처럼 화면 밖으로 튀어나올 듯한 생동감을 지닌다. 성 테레사의 휘날리는 옷자락과 천사의 움직임은 실제 공간을 점유하며 관람자에게 극적 몰입을 유도한다. 조각이라는 매체는 본래 단단하고 고정된 재료를 다루기에 회화적 표현이 어렵다는 한계가 있다. 그러나 베르니니는 대리석이라는 재료를 마치 부드러운 천처럼 다루며, 얇은 옷감, 인간의 피부, 머리카락 등의 유기적 질감을 생생하게 재현하였다. 이 같은 기법은 바로크 회화가 보여주는 빛과 어둠, 감정의 층위를 조각에서도 구현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더불어 그는 조각을 배치하는 공간 자체를 연출의 일부로 보았다. <성녀 테레사의 황홀>은 단지 조각으로만 구성된 것이 아니라, 빛이 위쪽에서 자연스럽게 흘러들도록 건축적으로 설계되었고, 관람자 시선에 따라 효과가 극적으로 변화하는 구조를 가지고 있다. 이는 무대미술과도 유사한 시각 연출로, 바로크 시대 예술의 총체적 특성을 반영한다. 결국 베르니니는 조각을 고정된 오브제에서 탈피시켜, 감정의 내러티브와 시공간적 구성까지 포함하는 '시각적 드라마'로 확장시켰다. 이는 이후 18세기 로코코 조각뿐 아니라, 현대 설치미술까지 영향을 미친 매우 중대한 전환이라 할 수 있다.

 

조각과 회화의 경계를 넘은 예술가

잔 로렌초 베르니니는 조각이라는 장르를 해체하고, 그것을 회화적 언어로 재조립한 예술 혁명가라 할 수 있다. 그의 작품은 조형미를 뛰어넘어 감각과 감정을 동시적으로 자극하며, 관람자와의 적극적인 상호작용을 유도한다. 이처럼 조각에 시간과 감정, 공간이 결합된 형태는 바로크 예술의 본질을 완벽히 구현한 결과였다. 베르니니는 단순한 조각가가 아니라 연출가이며, 심리극의 연기자이자 건축가였다. 그는 형태 속에 이야기를 담았고, 재료 속에 감정을 새겼으며, 정지된 조형 속에 생명력을 불어넣었다. 이러한 면모는 그가 왜 미켈란젤로 이후 가장 위대한 조각가로 불리는지를 잘 설명해준다. 그의 예술은 회화적 조각이라는 표현을 넘어선, 종합 예술의 경지에 있다. 오늘날 우리는 조각을 단순한 형상이 아닌 하나의 경험으로 인식하게 되었으며, 이는 전적으로 베르니니가 예술의 개념 자체를 변화시켰기 때문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결론적으로, 잔 로렌초 베르니니는 조각과 회화, 건축과 무대, 감성과 기술이 결합된 예술의 이상형을 제시한 인물이며, 그의 유산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예술가들에게 깊은 영감을 제공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