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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관식의 금강산 화폭, 자연에 깃든 민족정신의 형상화

by overtheone 2025. 6. 17.

한국화의 거장 변관식은 금강산을 주요 모티프로 삼아 한국적 산수화의 진경미를 구현하였다. 그의 작품은 단순한 자연 묘사에 그치지 않고, 일제강점기라는 시대 상황 속에서 민족의 정체성과 정신을 담는 시각 예술의 상징으로 기능했다. 본문에서는 변관식의 금강산 화풍과 그 안에 담긴 민족정신, 그리고 한국회화사에서의 위치를 심도 있게 고찰한다.

변관식 관련 사진

금강산과 함께한 화가, 변관식의 예술 여정

20세기 초중반, 한국은 국권을 잃고 민족의 자존과 문화가 유린되던 암울한 시기를 겪고 있었다. 그 시기에도 예술은 꺼지지 않는 등불처럼 민족의 혼을 지키는 수단으로 존재했고, 그 최전선에 있었던 화가가 바로 변관식(1899~1976)이었다. 그는 전통 회화의 맥을 잇되, 이를 통해 민족의 자연, 특히 금강산이라는 상징적 장소를 지속적으로 화폭에 담아냄으로써 시대정신을 예술로 형상화한 인물이다. 변관식은 어려서부터 수묵화에 남다른 재능을 보였으며, 일제강점기라는 가혹한 시대에도 한국 전통회화의 정신을 잃지 않고 화단에 큰 발자취를 남겼다. 특히 금강산을 중심으로 한 산수화는 그의 예술에서 중심적 소재였고, 이는 단순한 경관의 아름다움 이상의 의미를 내포하고 있었다. 금강산은 조선 회화사에서 오랜 전통을 가진 소재였으나, 변관식에게 있어 금강산은 민족의 상징이자 영혼 그 자체였다. 그는 화폭 속에 단순히 산천을 담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 숨 쉬는 기운과 정신을 포착하고자 했다. 그의 금강산은 엄밀한 형태보다 생명력과 분위기에 방점이 찍혀 있으며, 이는 당시 전통회화가 형식에서 벗어나 정신적 예술로 진화했음을 보여주는 증거였다. 따라서 변관식의 그림은 시각적 재현이 아닌 정서적 공명, 즉 자연에 대한 감응과 민족에 대한 의식을 담은 회화적 언어라 할 수 있다. 그는 ‘전통의 현대화’를 평생의 과제로 삼았으며, 조선 말기에서 이어진 진경산수화의 유산을 계승함과 동시에, 이를 당대의 시대적 과제와 결합시켰다. 금강산을 반복적으로 그린 그의 집념은 단순한 소재의 선택이 아닌, 금강산이라는 공간을 통해 민족성과 예술성을 동시 추구한 지향점의 결과였다. 이처럼 변관식은 예술을 통해 민족의 얼굴을 그리고자 했고, 그 결과는 수묵의 농담 속에 오롯이 남아 있다.

변관식 금강산 산수화의 회화적 특징과 상징성

변관식의 금강산 그림은 형태보다는 감정, 사실보다는 상징에 가까운 표현 방식을 취한다. 그가 그린 금강산은 실재하는 경치를 기반으로 하되, 감정의 층위를 더해 그려진 이상화된 풍경이다. 이는 단순한 시각적 재현에서 벗어나, 관람자에게 정신적 울림을 제공하려는 의도의 결과라 할 수 있다. 그의 대표작 중 하나인 《금강산 만물상도》는 그러한 특징이 잘 드러나는 작품이다. 이 작품에서는 바위산의 선이 기하학적으로 단순화되어 있으며, 절벽과 봉우리는 과장되게 묘사되었다. 하지만 그 과장은 단지 회화적 기법이 아니라, 금강산의 웅장함과 숭고함을 강조하려는 상징적 표현이다. 수묵의 농담과 필선의 속도감이 어우러져 화면에 생명력을 부여하며, 이를 통해 관람자는 단지 풍경을 보는 것이 아니라, 금강산이라는 ‘기운생동’의 정신을 감각하게 된다. 또 다른 대표작 《해금강도》는 변화무쌍한 해안 절벽과 파도, 그리고 바위의 흐름을 다루며, 내륙의 장엄함과는 또 다른 금강산의 표정을 보여준다. 이 그림에서도 변관식은 실재 경관의 세부보다 화면 전체의 구성과 흐름에 집중하며, 장중하고 웅대한 분위기를 극대화한다. 특히 바위에 투사된 묵의 번짐과 여백의 활용은 한국 수묵화 전통을 계승하면서도 감정의 전달에 방점을 둔 그의 화풍을 여실히 드러낸다. 변관식은 또한 자신만의 독자적 필법을 고안하였다. 그는 전통적인 ‘점준법’과 ‘선염법’을 기반으로 하되, 화면 전체에 일관된 리듬을 부여하는 방식으로 재구성했다. 그의 산수화에는 하나의 중심에서 출발하는 시점이 없으며, 오히려 전체 화면이 균형을 이루며 하나의 장면으로 감각된다. 이는 전통의 구도를 따르면서도 근대적 조형 감각을 도입한 매우 선진적인 회화 방식이었다. 무엇보다 그의 금강산 화폭이 주는 가장 큰 감동은 ‘정신의 투사’에 있다. 금강산이라는 대상이 단순한 자연경관이 아니라, 우리 민족의 영혼, 또는 잃어버린 고향, 혹은 이상향으로 겹쳐지는 것이다. 그의 그림을 바라보는 이들은 단순한 미적 감상에 그치지 않고, 그 안에서 어떤 기억과 감정, 그리고 소망을 발견하게 된다. 이것이 바로 변관식 금강산 산수화가 단순한 풍경화 이상의 회화로 평가받는 이유이다.

자연을 넘어 정신으로, 변관식 예술의 유산

변관식은 20세기 한국 화단에서 전통 산수화의 맥을 잇고, 동시에 그 회화를 통해 시대의 정신을 담아낸 보기 드문 예술가였다. 그의 금강산 그림들은 단지 아름다운 경치를 보여주는 회화가 아니라, 일제강점기라는 암흑의 시대 속에서 민족의 정체성과 예술의 존엄을 지키려는 투쟁의 산물이었다. 그는 금강산이라는 소재를 통해 ‘한국다움’을 시각적으로 상징화하였고, 이는 당대 관람자뿐 아니라 오늘날 우리에게도 강력한 메시지를 전달한다. 그의 회화는 전통 수묵화의 기법을 계승하였지만, 그 안에 담긴 감정과 의식은 매우 현대적이다. ‘자연은 단지 본받는 대상이 아니라, 그 속에 나를 비추는 거울’이라는 그의 시각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하며, 회화란 무엇인가에 대한 본질적 질문을 던지게 만든다. 또한 금강산이라는 상징은 현재에도 분단 현실 속에서 여전히 복잡한 의미를 갖기에, 그의 작품은 역사적 무게를 떠안고 있다. 현대 한국화가 지향해야 할 길이 있다면, 그것은 단순한 형식 실험을 넘어 정신과 정체성의 회복일 것이다. 변관식은 그 길을 이미 걸었던 사람이며, 그의 작품은 회화가 어떻게 시대의 목소리가 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교본이다. 그의 예술은 역사와 맞서 싸운 ‘붓의 저항’이자, 우리 모두가 되찾아야 할 풍경의 기억이다. 결론적으로 변관식은 단지 산수화의 대가가 아닌, 민족정신의 화폭을 열어젖힌 거장이었다. 그의 금강산 그림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살아 있으며, 한국미술의 뿌리를 말할 때 반드시 기억되어야 할 이름이다. 그가 남긴 수묵의 세계는, 우리가 지켜야 할 ‘정신의 금강산’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