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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생광의 불화, 전통과 현대의 경계를 넘은 예술혼

by overtheone 2025. 6. 17.

박생광은 불화라는 전통적 주제를 바탕으로 한국화의 새 지평을 연 독창적 화가였다. 그의 작품은 불교미술의 형식적 계승을 넘어서, 현대적 감성과 민족 정체성의 재해석을 통해 예술의 새로운 방향을 제시했다. 본문에서는 박생광의 불화가 지닌 조형미와 정신성, 그리고 그것이 현대 한국화단에 남긴 예술사적 의의를 심층적으로 고찰한다.

박생광 관련 사진

불화와 민족예술의 접점에서 태어난 박생광의 회화

20세기 한국 미술사에서 가장 독창적인 화풍을 구축한 인물 중 하나로 박생광(1904~1985)을 꼽을 수 있다. 그는 전통 한국화를 계승하되 그 안에 민족 정체성과 시대정신, 그리고 불교적 상징체계를 강렬하게 녹여낸 화가로, 특히 1970~80년대의 ‘불화 연작’은 그의 예술세계를 대변하는 대표적 결과물이다. 불화는 오랜 시간 종교적 도상에 머무는 장르였지만, 박생광은 그것을 예술로 끌어올렸고, 회화적 실험과 정신성의 통합을 이루어냈다. 박생광은 일본 도쿄미술학교에서 일본화(니혼가)를 전공하였으며, 귀국 후에는 민족문화의 회복과 한국화의 독립성을 화단의 중심 의제로 삼았다. 특히 1970년대 후반부터는 ‘한국적 색채’를 강조한 대작 시리즈를 집중적으로 제작했으며, 이 시기 불화와 무속, 전통설화를 중심으로 한 주제가 그의 화폭을 장악하였다. 이는 단순한 민속의 재현이 아니라, 전통적 정신세계를 현대적 감각으로 재해석하려는 예술적 투쟁의 결과였다. 불화는 일반적으로 정형화된 구도와 상징체계를 가지며, 회화보다는 신앙의 수단으로 이해되어왔다. 그러나 박생광은 이 전통을 깊이 있게 탐구하면서도, 불화의 조형미를 예술적으로 재해석하는 데 주력했다. 그는 불화를 경건하게 복원하는 데 머무르지 않고, 그것을 새롭게 번안하고 극대화하였다. 특히 원색 계열의 강렬한 색감과 거대한 화면, 그리고 전통 도상에 대한 파격적 배치와 해체는 불화라는 장르가 지닐 수 있는 예술적 가능성을 확장시켰다. 그의 작업은 단순한 형식 실험이 아니었다. 그 안에는 전통에 대한 경외와 시대에 대한 응답이 동시에 존재하였다. 특히 불화 속 부처나 보살상은 그의 손을 거치며 인간의 내면과 정서, 시대의 고뇌를 담은 존재로 변모하였다. 이는 종교적 표현을 예술의 언어로 전환한 놀라운 시도였으며, 박생광이 한국 회화사에서 갖는 상징성을 뚜렷하게 드러내는 대목이다.

불화에 담긴 박생광의 색채감각과 조형의식

박생광 회화의 가장 큰 특징은 ‘색채’다. 특히 그의 불화 연작에서는 원색 계열의 강렬한 색감이 화면 전체를 지배하며, 전통 수묵 위주의 한국화 경향과는 뚜렷하게 차별된다. 이는 그가 말한 ‘한국인의 정서는 강렬한 색감에 있다’는 미학적 인식의 결과로, 오방색을 비롯한 전통 색채에 대한 연구와 확신이 반영된 것이다. 그는 불화의 색을 재현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것을 감정과 에너지의 도구로 사용하였다. 예컨대 《지장보살도》, 《금강역사도》, 《수월관음도》와 같은 작품에서는 붉은색과 금색, 푸른색의 대조와 반복을 통해 화면에 긴장감과 신성을 동시에 부여하였다. 이는 단순한 종교적 도상화가 아니라, 색으로서 기운(氣運)을 전달하려는 조형적 시도였다. 형태와 구도에 있어서도 박생광은 매우 과감한 실험을 감행하였다. 그는 전통 불화의 정중앙 구도, 대칭적 배치를 차용하되, 이를 극단적으로 확대하거나 왜곡시키며 동세(動勢)를 부여하였다. 특히 등장 인물의 표정이나 손짓, 주변 배경 요소들은 과장과 변형을 통해 인간 심리의 복잡한 결을 드러내는 수단으로 활용되었다. 이로 인해 그의 불화는 정적이지 않고, 오히려 매우 역동적이며 감정적 긴장을 품는다. 또한 그는 불화의 상징을 ‘현대적 언어’로 해석하는 데 집중했다. 관음보살은 자비의 상징일 뿐 아니라 여성성과 치유의 코드로, 지장보살은 단지 사후세계의 존재가 아니라 고통을 감내하는 인내와 민중정신의 상징으로 재구성되었다. 이러한 상징 해석은 박생광이 불화를 단순한 종교 회화가 아닌, 민족 서사의 장으로 확장시켰음을 의미한다. 더 나아가 그의 회화는 ‘불화의 현대미술화’라는 점에서 후대 작가들에게 중요한 영향을 끼쳤다. 그는 불교 도상을 당대의 감정과 결합시키며, 회화가 영혼의 거울이 될 수 있음을 입증했다. 이러한 작업은 한국화의 단절을 잇는 시도였으며, 동시에 회화가 삶의 고통과 염원을 품을 수 있는 예술임을 보여주는 진정성의 표현이었다.

박생광의 불화, 전통과 시대를 가로지른 예술언어

박생광의 불화는 전통의 복원이 아니라, 전통에 대한 재해석이며 시대정신의 반영이다. 그는 민족 정체성과 미적 감수성을 전통 불화의 틀 안에서 폭발적으로 드러냈으며, 그것을 통해 단지 화가로서의 정체성을 넘어 한국적인 예술언어를 창조한 인물로 평가받는다. 그의 회화는 형식적으로는 과감하고, 내용적으로는 깊은 철학과 감정을 담고 있다. 특히 불화라는 종교적 도상체계를 현대적 감각과 결합시켜 인간 내면의 본질을 포착하고자 한 시도는, 한국 근현대 미술사에서 매우 독창적인 작업으로 자리매김한다. 이는 단순히 ‘그림을 잘 그린다’는 차원을 넘어, 예술가로서의 시대적 응답과 정체성 확립의 사례라 할 수 있다. 박생광이 남긴 유산은 지금도 한국화단의 다양한 영역에서 재해석되고 있다. 전통을 계승하되 그 안에서 새로운 감성과 문제의식을 발견하고자 하는 작가들은 그의 예술세계에서 깊은 통찰을 얻는다. 또한 불화에 대한 접근 방식 역시, 단순한 신앙적 상징에서 철학적·심리적 해석으로 확장되며 현대 미학에 융합되고 있다. 결론적으로 박생광은 불화를 통해 ‘한국적인 회화란 무엇인가’라는 물음에 깊이 있는 해답을 제시한 예술가였다. 그의 회화는 전통의 껍데기를 벗기고 그 본질을 현대에 소환한 행위였으며, 그 속에는 시대를 살아가는 예술가의 외침이 담겨 있었다. 그의 불화는 여전히 살아 숨 쉬며, 우리에게 질문을 던진다 — 전통은 무엇이며, 우리는 그 전통을 어떻게 계승하고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