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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요 속의 불안, 조르조 데 키리코와 형이상학적 회화의 시작

by overtheone 2025. 5. 6.

조르조 데 키리코는 현실과 환상의 경계를 허문 형이상학적 회화(Metaphysical Painting)의 창시자로, 정적이고 비현실적인 도시 풍경을 통해 시간과 존재에 대한 불안을 시각화했다. 그의 작품은 초현실주의의 선구적 역할을 하며, 이후 현대미술의 상징적 언어와 심리적 공간 개념 형성에 깊은 영향을 주었다. 본문에서는 데 키리코의 철학, 조형 언어, 대표작을 중심으로 그의 예술 세계를 심도 있게 탐색한다.

조르조 데 키리코

시공간의 틈을 그린 화가, 조르조 데 키리코와 형이상학적 회화

조르조 데 키리코(Giorgio de Chirico, 1888~1978)는 이탈리아 출신의 화가로, 20세기 초 유럽 현대미술에서 ‘형이상학적 회화(Pittura Metafisica)’라는 독자적인 예술 양식을 정립한 인물이다. 그는 환상적이면서도 고요한 도시 풍경, 인형 같은 인물, 길게 드리워진 그림자, 비현실적으로 배치된 사물들을 통해, 단순히 외관의 묘사를 넘어선 ‘존재의 본질’을 탐구했다. 그의 회화는 시간의 정지, 공간의 낯섦, 의미의 해체를 통해 보는 이로 하여금 현실의 이면을 의심하게 만든다. 이처럼 데 키리코는 회화라는 매체를 통해 철학적 질문을 시각화한 화가였으며, 초현실주의의 직접적인 선구자로 자리매김했다. 데 키리코는 독일 뮌헨에서 철학과 예술을 공부하면서 니체, 쇼펜하우어, 아르투르 루이젤 등 독일 낭만주의와 존재론 철학에 깊이 영향을 받았다. 특히 니체의 저서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 등장하는 “가장 심오한 생각은 낮은 지점에서 튀어나온다”는 문장은 그의 예술적 방향에 결정적인 전환을 가져왔다. 그는 사물의 본질은 겉으로 드러난 모습 너머에 있으며, 예술은 그 감춰진 의미를 포착하는 도구가 되어야 한다고 믿었다. 이러한 철학은 그가 ‘형이상학적 예술’이라는 독자적 개념을 제시하게 된 배경이다. 그는 1910년경부터 밀라노와 파리를 오가며 일련의 ‘형이상학적 도시풍경’을 제작하기 시작했다. 이 시기의 대표작 <큰 탑의 신비(Mystery and Melancholy of a Street, 1914)>나 <예언자의 보상(The Enigma of the Oracle)> 등은 깊은 원근감을 강조하는 도시 공간, 인형이나 조각상 같은 무생물적 인물, 비현실적인 색감과 조명의 조합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장면들은 현실 같으면서도 어딘가 불안하고 낯설며, 뚜렷한 내러티브 없이 멈춰 있다. 이는 마치 꿈속의 한 장면처럼, 혹은 시간 너머의 세계처럼 느껴지며, 관람자에게 일종의 존재적 어지러움을 유도한다. 데 키리코의 회화는 인물 중심의 감정 표현에서 벗어나, 오히려 비인간적인 공간을 통해 인간의 내면을 반사하는 방식을 취했다. 그는 회화 속에 등장하는 광장, 건물, 기차, 인형, 기둥, 사다리, 과일 같은 오브제를 반복적으로 사용하면서, 그것들의 상호 관계를 전통적 문법이 아닌 불연속적 배치로 구성했다. 이로 인해 그의 회화는 직관적 이해를 방해하며, 의미의 지연을 유발하고, 결국 관람자로 하여금 ‘의미를 찾는 행위 자체’를 하도록 만든다. 즉, 데 키리코는 시각을 통해 철학적 사유를 유도한 예술가였다. 그는 “사물은 때로 그것이 놓인 장소와 빛, 조용함에 의해 진실을 드러낸다”고 말했다. 이 말처럼 그의 그림 속 오브제는 설명되지 않지만, 존재하는 방식 자체로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데 키리코는 이 같은 미학을 통해 관람자에게 의미를 주입하는 것이 아니라, 의미를 ‘찾게 만드는’ 구조를 설계하였고, 이는 이후 초현실주의 화가들—살바도르 달리, 르네 마그리트 등—에게 결정적인 영향력을 행사하였다. 결국 데 키리코는 단순히 낯선 회화를 그린 예술가가 아니다. 그는 회화를 철학적 탐구의 공간으로 바꾸었으며, 현실과 비현실, 존재와 부재, 감정과 거리감 사이의 긴장을 시각화한 독보적인 미술 언어를 구축했다. 그의 형이상학적 회화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하며, 우리가 ‘보는 것’의 본질에 대해 계속해서 질문하게 만드는 시각적 철학으로 남아 있다.

 

불안한 정적과 비현실의 조형화, 데 키리코 대표작 분석

조르조 데 키리코의 형이상학적 회화는 고요하지만 결코 평온하지 않다. 그의 작품 속 세계는 광장이거나 거리이며, 햇살이 선명하게 들고 있다. 그러나 그 속엔 인물의 부재, 시간의 멈춤, 원인을 알 수 없는 불안이 흐른다. 이것이 바로 데 키리코 회화의 핵심이다. 그는 풍경이나 인물의 묘사에 머무르지 않고, 시공간의 불일치 속에서 심리적 불안과 존재의 의문을 시각적으로 구현했다. 그가 창조한 조형 언어는 사실주의의 규칙에서 벗어나 초현실주의보다 먼저 '현실 너머의 세계'를 형상화한 전례 없는 시도였다. 그의 대표작 중 하나인 <거리의 신비와 우울(Mystery and Melancholy of a Street, 1914)>은 이러한 미학의 정수를 보여준다. 이 작품에는 긴 그림자가 드리운 빈 광장과, 멀리서 놀고 있는 듯한 작은 소녀의 모습이 등장한다. 그러나 소녀의 앞에는 검은 그림자가 어둡게 드리워져 있으며, 건물의 아치 뒤편은 보이지 않아 위협적인 공간감을 조성한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지만, 바로 그 '아무 일 없음'이 극단적인 긴장감을 유도한다. 이와 같은 구성은 고전적 원근법을 사용하면서도, 그 원근법을 심리적 불안정성과 모순되게 결합시켜 관람자의 감정적 충돌을 유발한다. 또 다른 대표작 <철학자의 회한(The Philosopher’s Conquest, 1914)>에서는 검은색 기마상, 아치 구조물, 푸른 하늘, 사탕수수 같은 과일 상자가 함께 배치되어 있다. 이 장면은 논리적으로 설명되지 않지만, 각각의 오브제가 갖는 상징성—기마상의 권위, 아치의 통과성, 과일의 일상성—이 하나의 내면 풍경을 구성한다. 데 키리코는 이러한 장면을 통해 외부 세계의 사물을 조합해 내면의 상태를 은유했고, 그 내면은 늘 고독하고, 정체되어 있으며, 설명되지 않는 상태로 제시된다. <예언자의 방(The Seer, 1915)>은 데 키리코의 형이상학적 인물 표현의 전형이다. 이 작품에서는 머리 없는 마네킹과 고대 건축의 요소들, 그리고 무의미하게 흩어진 지식의 상징물들이 등장한다. 이러한 조합은 인간 이성의 해체와 무력함을 상징하며, ‘지식’이란 것이 실제 현실에서는 얼마나 허약하고 무기력할 수 있는지를 비판적으로 보여준다. 데 키리코의 인물들은 대부분 눈이 없거나, 얼굴이 없거나, 조각상처럼 비인간적인 상태로 제시되는데, 이는 주체의 정체성 상실을 상징한다. 그는 인간 존재의 불확실성을 시각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데 키리코는 마치 연극 무대를 구성하듯, 배경과 사물, 인물의 위치를 세심하게 배치했다. 그는 이 구성을 통해 하나의 ‘심리적 무대’를 연출했으며, 그 무대 위에서 우리는 명확한 이야기 없이 감정적 울림만을 느끼게 된다. 이와 같은 방식은 이후 살바도르 달리의 환각적 초현실주의, 르네 마그리트의 시각적 패러독스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었고, 현대의 설치미술과 사진예술에서도 자주 차용된다. 데 키리코는 입체주의나 표현주의가 보여주려 했던 격렬한 붓질이나 색의 분출을 경계했다. 그는 절제된 색, 정밀한 선, 고전적 구도를 통해 ‘시각적 침묵’을 연출했다. 이 침묵은 그림 속 인물이나 사물의 ‘말하지 않음’을 통해 관람자에게 오히려 더 많은 사유를 요구하게 만들며, 감정을 직접 표현하기보다 감정을 유도하는 구조를 만든다. 이처럼 그의 회화는 ‘설명’이 아닌 ‘질문’을 던지는 회화였다. 형이상학적 회화는 종종 ‘무엇을 말하는가’보다는 ‘왜 말하지 않는가’를 통해 감정과 철학을 전달한다. 데 키리코는 이 역설적 구조를 통해 보는 이로 하여금 회화 속에 숨겨진 시간, 감정, 의미를 해석하도록 유도했다. 그의 그림은 시공간의 틀 안에 있으면서도, 그 틀을 불편하게 만든다. 이는 단지 조형 실험이 아니라, 존재에 대한 근원적인 물음이 시각 언어로 치환된 결과물이라 할 수 있다.

 

시각적 철학으로 남은 데 키리코의 형이상학적 유산

조르조 데 키리코는 현실을 비틀어 보여주는 방식으로 시각예술의 개념을 전복했다. 그는 회화를 통해 보이는 것 이면의 세계, 즉 보이지 않는 시간과 존재의 본질을 표현하려 했으며, 그 방식은 매우 조용하지만 압도적이었다. 그의 작품에서는 사건이 일어나지 않지만, 바로 그 ‘정지’ 속에서 상상을 유도하고 감정을 자극하는 힘이 발휘된다. 데 키리코는 감정을 묘사하지 않고 유도했으며, 이야기를 제공하지 않고 질문을 던졌다. 이러한 구조는 현대미술의 사유 중심적 경향의 선구적 예라 할 수 있다. 그는 고전적 회화 전통에 뿌리를 두고 있으면서도, 이를 완전히 뒤집었다. 전통 원근법을 유지하면서도 그 안에 낯선 감정을 심어 넣었고, 고대 조각과 건축 양식을 활용하면서도 그것이 무의미하게 배치되도록 함으로써 철학적 불안을 유도했다. 그는 구성을 해체하지 않았지만, 그 구성을 통해 의미를 해체했다. 이러한 접근은 단지 시각예술에만 영향을 끼친 것이 아니라, 이후 문학, 연극, 철학, 심리학 전반에도 깊은 자취를 남겼다. 오늘날 데 키리코의 형이상학적 회화는 미술관을 넘어, 광고, 영화, 사진, 디자인에까지 영향을 끼치고 있다. 고요하지만 불안한 배경, 낯선 배치, 시간의 정지가 주는 긴장감은 현대 영상 언어에서 매우 중요한 표현 기법이 되었으며, 특히 데이비드 린치, 크리스토퍼 놀란 같은 감독들의 작품에서 그 영향이 두드러진다. 그의 회화는 ‘초현실’이라는 개념을 미술 언어로 먼저 선취했고, 이후의 초현실주의가 이를 더욱 확장시켜 나간 것이다. 데 키리코는 단지 초현실주의의 선구자에 머물지 않는다. 그는 철학과 회화의 경계를 허문 존재이며, ‘시각으로 사유한다’는 명제를 실현한 예술가다. 그의 작품은 지금도 여전히 해석되고, 재해석되며, 다양한 분야에서 인용된다. 이는 그가 만든 형이상학적 이미지들이 단순한 장면이 아니라, 영속적인 ‘생각의 틀’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결국 조르조 데 키리코는 시간을 멈추는 화가였다. 그는 그림 속에서 모든 것이 정지된 듯한 상태를 통해, 오히려 보는 이의 사유를 흐르게 만들었다. 그의 작품은 마치 꿈처럼 설명되지 않지만 강한 인상을 남기며, 현실과 비현실 사이에서 인간 존재의 모호함을 정직하게 드러낸다. 그리하여 데 키리코는 회화를 통해 존재를 철학한 예술가로, 그리고 시각언어의 깊이를 확장시킨 조형의 철학자로, 현대미술사에 길이 남았다.